완자살 | 뜻이 넘치는 무늬
이 시리즈 · 전통창호 사전 · 5화 (전체 12화) 연재중
"전통창호의 이름과 짜임을 하나씩 정리합니다"
완자살 | 뜻이 넘쳐도 무늬는 하나입니다
완자살은 卍자 모양으로 짠 창입니다.
卍은 부처의 표식입니다. 『화엄경』에 여래의 가슴에 이 모양이 있다고 나옵니다. 이덕무도 『청장관전서』에 같은 말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법원주림』을 인용해 부처가 가슴에 만자를 지니고 태어났다 하고, 『능엄경요해』를 인용해 그것이 길한 상서를 표시하며 모든 덕을 모이게 한다고 합니다.
길상만덕(吉祥萬德). 완자살의 뜻은 이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답입니다.
완자살은 살림집 안방에 많이 씁니다. 안채 대청이나 사랑방 쪽에도 옵니다. 비를 맞는 바깥 창보다 안쪽 문에 붙는 무늬입니다.
한 짝만 다는 일은 드뭅니다. 대청 앞 분합문처럼 여러 짝을 나란히 세우는 자리에 주로 씁니다.

그런데 뜻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덕무는 같은 항목에 다른 풀이도 나란히 적어 두었습니다. 명나라 위교의 『육서정온』입니다. 卍은 수의 끝이고, 옛사람이 두 개의 一자를 취한 것은 만물이 一에서 일어나 一로 돌아와 끝나며 그 순환이 무궁하다는 이치를 취한 것이라고요. 불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숫자와 순환 이야기입니다.
번역도 갈렸습니다. 구마라집과 현장은 이 글자를 덕(德)으로 옮겼고, 보리류지는 만(萬)으로 옮겼습니다. 측천무후 때 만(萬)으로 읽도록 정해졌습니다.
기원설은 더 갈립니다. 태양이라고도 하고, 흐르는 물이라고도 하고, 둥글게 감긴 털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빛이라고도 합니다. 인도 고유의 것도 아닙니다. 세계 여러 곳에 같은 모양이 있습니다. 부처의 가슴이고, 모든 덕이 모이는 자리이고, 숫자의 끝이고, 순환의 이치이고, 태양이고, 물이고, 빛입니다. 무엇이 맞는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늬는 하나입니다.
뜻은 이렇게 여럿인데 완자살은 하나입니다. 卍자대로 짜면 완자살이고, 아니면 아닙니다. 목수마다 다르지 않습니다.
붙들고 있는 것이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획입니다. 卍은 획이 정해져 있습니다. 가로 하나 세로 하나가 겹치고, 네 끝이 같은 방향으로 꺾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이 형태는 뜻이 몇 개든 그대로입니다.
짜보면 압니다.
완자살은 규칙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짜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디까지가 완자인지 망설일 일이 없고, 획이 정해져 있으니 살이 갈 자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손이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단정하게 떨어집니다.
보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짝을 나란히 놓아도 눈이 편안합니다. 짝이 늘어난다고 무늬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살로 옮길 수 있는 것은 획밖에 없습니다. 뜻은 살이 되지 않습니다.
아자살과 나란히 놓으면 분명해집니다.
앞 글에서 아자살은 흩어졌다고 썼습니다. 어디까지가 아자인지 목수마다 다릅니다. 붙들 형태가 헐거웠기 때문입니다.
한쪽은 뜻이 없어서 흩어진 것이 아니고, 다른 쪽은 뜻이 많아서 남은 것이 아닙니다. 양쪽 다 뜻은 결정에 끼지 못했습니다. 결정한 것은 형식입니다.
길상문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씁니다.
복을 부르는 무늬라는 뜻으로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무늬가 뜻을 담아서 남은 게 아닙니다. 형식이 분명해서 남았고, 남았기 때문에 뜻이 계속 붙었습니다. 부처의 가슴도, 숫자의 끝도, 태양도 그렇게 붙었습니다.
뜻이 일곱 개 붙는 동안 무늬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경계가 분명하면, 그 뒤에 오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뜻은 나중입니다.
출처
- 『화엄경』 제48권
- 이덕무, 『청장관전서』 「앙엽기」 만(卍)
- 「만자」·「만자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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