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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이해시키는 게 아닙니다

이 시리즈 · 오늘도 짭니다 · 8화 (전체 8화) 연재중

"짜면서 드는 생각을 적습니다"

  1. 1화 평목의 일
  2. 2화 부처님 손바닥
  3. 3화 오늘도 짭니다
  4. 4화 형식을 계속 바꾸면 차이는 소음에 묻힙니다.
  5. 5화 톱길이 잡히기 전에
  6. 6화 내 솜씨에 맞춰 생각할까 봐
  7. 7화 손바닥도 눈입니다
  8. 8화 감각은 이해시키는 게 아닙니다

감각은 이해시키는 게 아닙니다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감각 좋은 사람이 무드보드를 모아 와서 "이거 예쁘죠" 하는 건 그 사람 취향일 뿐이고, 디렉터라면 왜 이게 필요한지 클라이언트를 논리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클라이언트 앞에서 "예뻐서요"로는 일이 넘어가지 않습니다.

왜 이 동선이고 왜 이 자재인지 말할 수 있어야 일이 움직입니다.

그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분명히 실력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걸렸습니다.

감각 얘기로 시작해서 취향 얘기로 끝나는데, 둘이 같은 것처럼 놓여 있었거든요.


취향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이건 내 취향이야" 하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어느 무리에 끼고 싶은지, 요즘 뭐가 도는지, 뭘 갖고 싶은지가 섞여 있습니다.

그걸 다 풀자면 따로 한 편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는 취향이 그렇게 섞인 덩어리라는 것만 짚어 두겠습니다.

그래서 취향은 들으면 이해가 됩니다. 마음먹으면 있는 척도 할 수 있고요.


감각은 조금 다릅니다.

감각이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증명은 못 해도 "여기를 보세요" 하고 한 자리를 짚을 수는 있습니다.

취향은 대개 전체를 두고 좋다고 말하는데, 감각은 어딘가 한 자리를 가리킵니다.

저는 짚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둘을 가릅니다.


그럼 감각은 뭘까요.

제 말로 하면, 보고 해 본 것이 자기 방식으로 많이 쌓여서 판단이 먼저 나오는 상태입니다.

살 칸 하나가 조금 납작하면 자를 대기 전에 눈에 먼저 걸립니다.

왜 걸렸는지는 재 보고 나서야 압니다.

견주는 기준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 들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쌓임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것을 봐도 서로 다르게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눈에는 칸이 납작하게 들어오고, 옆 사람 눈에는 그냥 칸으로 들어옵니다.

감각으로 짚을 수는 있어도 그 자리에서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근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 몸이 제 방식으로 처리한 결과라서 남에게 그대로 꺼내 보일 수가 없는 거지요.

감각이 무엇인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말을 읽는다고 칸이 납작해 보이기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현장에서 말하는 논리는 이미 내린 판단에 나중에 지어 입히는 옷인 경우가 많습니다.

옷을 잘 짓는 것도 솜씨입니다. 하지만 옷이 몸은 아닙니다. 옷은 벗어서 건네줄 수 있어도 몸은 빌려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도, 자를 대고 숫자를 보여 줘도, 듣는 사람이 받아 가는 건 옷입니다.

같은 옷도 입는 사람 몸이 다르면 같은 모양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모르고 일하면 정말 힘듭니다. 설명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믿으니까 한 번 더 설명하게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상대가 성의가 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듣는 쪽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알아들었는데 왜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니까요. 일은 그 사이에서 멈춥니다.


감각은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일이 됩니다.

설명을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설명은 합니다. 다만 그 설명이 감각까지 건너갈 거라고 기대하지 않을 뿐입니다. 대신 짚어 줍니다.

그 자리를 같이 보는 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다음은 상대 몸에서 시간이 해 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짚어 주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보였던 건 아닐 겁니다. 저도 처음엔 못 봤습니다.

디자인을 막 시작했을 때 공대 출신 선배가 제 작업을 보고 이것저것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선의 비례가 어떻고 각도가 어떻고 하는 세세한 것들이었습니다. 속으로는 공대 출신이 디자인에 대해 뭘 안다고 하며 흘려들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그 선배 말이 맞았다는 걸요. 지금 돌아보면 선배가 한 일이 바로 그 짚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설명을 덜 해서 제가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제 몸이 아직 거기까지 가 있지 않았던 거지요.


목수 일을 배우면서도 같은 시간을 한 번 더 지났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보낸 몇 해가 그랬습니다.

그때는 답답하기만 했는데, 돌아보면 감각이 건너오는 길은 그것 말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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